일상묵상 #114 _오하이오에서 눈이 열리다
- 조선형 목사

- Aug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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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리교 한국선교 140주년기념 선교대회’ 참석차 오하이오 클리브랜드에 와 있습니다. 선교대회를 주관한 오하이오 연회는 140년 전 평신도 여성 선교사로 조선에 왔던 스크랜튼 여사가 태어나 살았던 곳입니다. 스크랜튼(Mary F. Scranton, 1832-1909)은 미국 북감리교(현재의 연합감리교회) 소속의 선교사로, 1885년에 한국에 파송된 최초의 여성 교육 선교사였습니다.
스크랜튼은 당시 아들인 윌리엄 스크랜튼 선교사와 함께 1885년에 조선에 들어왔고, 당시 유교적 가부장제 아래 있었던 한국 여성들에게 교육의 길을 열었습니다. 1886년, 서울 정동에 한국 최초의 여성 교육 기관인 ‘이화학당'을 설립했고, 이것이 이화여자대학교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그녀의 교육 철학은 “한 명의 여성을 변화시키면, 한 가정과 한 사회가 바뀐다"는 믿음 위에 세워졌습니다. 스크랜튼는 1909년 한국에서 별세하여 서울 양화진 외국인 선교사 묘역에 안장되어 있습니다.
스크랜튼의 믿음처럼, 한 여성이 변화되자 사회를 바꾸는 일이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유관순(1902-1920)은 이화학당의 후신인 이화학당 보통과에서 교육을 받던 학생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자유, 정의, 민족, 신앙의 가치를 내면화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로 스크랜튼이 1909년에 별세하고, 만 10년 후, 1919년 3.1 운동이 일어났을 때, 유관순은 이화학당의 교사들, 학생들과 함께 독립만세에 참여했습니다. 거기서 그치지 않고 고향 천안으로 내려가 아우내 장터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옥고 끝에 18세 나이로 순국했습니다.
2박 3일의 선교대회 동안, 예배와 연구 발제와 포럼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미국과 한국에서 ‘이미' 그리고 ‘앞서 ’선교를 시작하신 하나님의 경륜에 대한 예배, 그 부르심과 순종의 발자취에 대한 연구와 발제, 그리고 오늘날 우리가 서 있는 자리에서 응답의 길을 돌아보는 시간(포럼)이 이어졌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부르신 하나님과 앞서 순종한 증인들의 여정에 함께 서 있는 우리 모습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